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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올해 6월의 독립운동가 ‘임병극 선생’ 선정

기사승인 2020.06.02  10: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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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군비단의 연해주 군대파견 현황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임병극을 2020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임병극은 1885년 평안도에서 태어났다. 1917년 북간도로 망명한 후 대한국민회에 참여한 임병극은 외교실행위원으로 선임돼 중국 관·군의 협조를 얻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한편 1920년 초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단들이 통합을 모색한 결과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에 임병극이 활동하던 대한국민회군도 동참했고 대한북로독군부의 피복과장으로 선임돼 독립전쟁에 필요한 물자 조달을 책임졌다.

또 대한국민회군 제2중대장으로 임명, 독립전쟁의 일선에 나섰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와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임병극은 독립군 연합부대의 중간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을 인솔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데 힘을 보탰다.

청산리전투 후 임병극은 부하들과 백두산 서쪽의 안도현으로 이동해 의용대를 조직하고 1921년 4월 말까지 군자금 모집·일제 침략기관 공격 등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했다.

이후 근거지를 한·중 국경지대인 장백현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비단에 합류한 후에는 경호부장으로도 활동하고 1922년 중반 연해주로 이동해 고려혁명군에 참여한 그는 남부사령관으로 임명돼 국내 진입 작전을 시도했다.

1923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편과 독립운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고려혁명군 대표자격으로 참가해 임시정부의 개편과 무장투쟁 실천을 주장했다.

국민대표회의가 끝난 후 연해주·북만주를 거쳐 연길로 돌아온 그는 3·1운동 5주년에 맞춰 간도 일대의 일본영사관 파괴·친일파 암살 등 의열투쟁을 계획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지하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4년 9월 중국군에 체포돼 징역 15년을 언도받았다.

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전쟁에 참여한 임병극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문교 기자 moongyo64@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앤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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