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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1월의 독립운동가 유도발‧유신영 선정

기사승인 2020.10.30  10: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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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발 유서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유도발‧유신영을 2020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유도발‧유신영 부자는 풍산(豊山)을 본관으로 하는 서애(西厓) 유성룡의 10대, 11대 후손이다.

이 가문은 ‘충효졸성(忠孝拙誠)’을 집안의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충효(忠孝)는 나라에 대한 의리, 졸성(拙誠)은 자신을 겸손히 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였다.

유도발, 유신영 부자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맞서 대를 이어 자결 순절했다. 이들의 순절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집안의 가치인 ‘충효졸성’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183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유도발은 1895년 일본의 영향으로 복식을 간소하게 바꾸는 ‘변복령’을 거부하고 의성군 덕암리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스스로 숨어 지내겠다는 뜻으로 ‘회은(晦隱)’이라는 호를 짓고 은거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자 충효의 의리상 구차하게 살 수 없다면서 죽음으로 나라의 의리를 지키고 일제에 맞설 것을 결심했다.

이에 11월 11일 유서를 남기고 단식을 시작했고 그의 단식이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일본인 관리가 찾아왔지만 만나기를 거부하고 단식을 이어나가다가 단식 17일째인 11월 27일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독립장을 추서했다.

185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유도발의 장남으로 태어난 유신영은 1895년 유인석 의진, 1896년 권세연 의진에 참여했다.

아버지 유도발이 1910년 경술국치 때 단식 순국하자 아버지를 따라 자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광무황제가 살아있어 국권이 반드시 회복될 것이며 그 때 국가를 위해 할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미뤘다.

이후 속리산(일명 광하산)에 은거한다는 뜻으로 ‘하은(霞隱)’을 호로 짓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1919년 광무황제가 서거하자 유신영은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죽음이 일제에 대한 항거임을 밝히고 유림들과 문중에게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당부하는 유서를 남긴 후 광무황제의 인산날인 3월 3일 음독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1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문교 기자 moongyo64@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앤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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